2020년 12월 29일 0일차부터 2021년 09월 22일 38주 1일차까지
2021년 09월 22일 (수), 오후 3시 10분
몸무게 3.3kg
또리, 세상 빛을 보다.
어제(화) 까지만 해도 잠자는데 불편함과 약간의 통증 (진통이 아닌 배가 불러서 윗가슴을 압박해 느끼는 통증) 이외에는 별 다른 증상이 없어서 오늘(수) 저녁은 꼭 출산 전 최후의 만찬 마냥 양념갈비와 냉면을 먹자던 와이프님의 몸상태가 오늘(수) 아침부터 심상치가 않다. (빠르면 23일 목, 늦으면 25일 토 즈음에 출산하지 않을까 싶어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수요일에는 꼭 양념갈비를 먹자고 서로 다짐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불편함과 통증을 느끼며 이슬 비치는 양도 많아지고 더 짙어졌다. 어제와는 다르게 좀 규칙적으로 복통이 찾아왔는데 출산이 처음인 우리는 이게 가진통인지, 진짜 진통이 시작된건지 정말 알 길이 없었다.
잘 모르겠으니 일단 산부인과에 전화. 지금은 아닌 것 같으니 진통 주기가 더 짧아지고 통증이 더 심해지면 전화를 달란다. 우선 믿어보자.
그렇게 11시가 좀 넘었을까. 집 안에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가야겠다 싶어 각자 싸 놓았던 캐리어를 덮어서 잠그고 산부인과로 출발할 준비를 한다.
오늘 원래 아점을 간단하게 빵 같은걸로 떼우고 가볍게 산책한 다음 저녁으로 양념갈비를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침 준비를 하나도 안해놓고 있다가 결국 빈속인 채로 집에서 출발하였다.
이대로 가면 와이프님 기력이 너무 없어서 자연분만이 되지 않을까봐 가는 도중에 맥도날드에 들러 급하게 햄버거 하나씩을 입에 물었다. 산부인과에 다가갈수록 와이프님 진통주기가 5분으로 점점 짧아졌는데, 진통이 올 때마다 온갖 인상 쓰면서 버티는 와이프님을 보니 너무 안쓰러웠다. 고통을 같이 느끼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상황에서는 운전과 짐 옮기는 것 밖에 없으니 이렇게 답답한 심정일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내진을 한 결과, 전체 약 10cm가 열려야 하는 자궁문이 8cm정도 까지 열렸고, 이 정도면 오늘 오후에는 출산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전에 느꼈던 아픔이 진통이 맞았다니... 기다리지 말고 그냥 바로 병원에 가볼 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일~월에 걸쳐서 가벼운 산행을 한 것이 또리(태명)가 더 커지지 않고 오늘 출산 할 수 있게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출산 예정일은 10월 5일이었으나 정기 검진하며 또리가 크는 속도를 보아하니 예정일 보다 2주 빠른 추석 연휴 즈음에 출산하는게 딱 좋다는 예상이 나왔었다. 계단 오르는 것 만으로는 좀 불안해서 이번 추석 연휴에는 가벼운 산행을 하자고 와이프님과 얘기했었고, 하루는 수통골쪽, 다음날은 보문산에 올랐었다.
1시 30분이 넘어가니 진통이 더 심해지는지 얼굴을 많이 찡그린다. 이게 참 답답한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고통을 분담할 수도 없는게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심박수도 160~170을 오갔는데, 이러다 뭔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2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옆 방에 가서 대기하고 와이프님을 지속적으로 봐주셨던 원장선생님께서 분만실로 들어가신다. 오늘 원래 휴진이신데, 와이프님 출산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원래 진찰 받던 원장선생님께서 출산을 도와주시는게 산모 입장에서도 훨씬 부담이 덜 하고 도움이 많이 되는데, 휴진이심에도 바로 와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였다.
원장선생님이 나오시더니 자궁문은 많이 열렸는데, 태아가 아직 위에 있단다. 산모가 밀어내서 태아가 내려오지 않으면 자연분만이 어려울 것 같다며, 그 마지노선을 오후 3시30분으로 말씀 주셨다. 그 이상도 산모가 계속 힘을 주고 그러면 나중가서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할 때 산모, 태아 모두 힘이 빠져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아까도 가뜩이나 먹은게 없고 계속 진통을 겪어서 기력이 없어했는데, 힘만 주다가 아기는 안내려오고 힘은 빠져서 자연분만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상황에 따라 제왕절개가 필요할 수 있음은 인지하고 있는데 우선 와이프님도 자연분만으로 또리를 출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2시 20~30분 정도 되었을까. 원장선생님이 나오시면서 산모가 의지가 있어서 잘 하면 될 것 같다 하신다. 약간의 안도감이 돌았다.
초반에 진통과 힘주는 것이 겹쳤을 때 나던 와이프님의 하이톤의 목소리가 어느새 낮고 걸걸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안그래도 초조했던 마음이 더 커지면서 걱정도 더 커진다.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힘이 빠져서 마지못해 나오는 소리가 이런 소리인건지 아니면 배 쪽에 힘을 집중시키려고 소리를 다르게 내는 건지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약 3시 5분정도 되고, 분만실에 있던 간호사가 나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른다. 거의 막바지 인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안에 들어갔다. 역시나 와이프님은 많이 지쳐 있었고, 원장선생님은 한 번 기운이 빠져서 계속 빠지면 안되기에 조금 빠른 템포로 진행을 하신다. 이에 와이프님도 박자 맞춰서 한 번 힘을 주니 머리가 나왔고,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힘을 주니 몸이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22일 (수), 오후 3시 10분. 3.3kg으로 건강하게 우리 또리가 세상에 나왔다.
탯줄을 잘라주고, 몸무게를 바로 측정하였다.
원래는 애기가 나오자마자 아빠가 목욕을 시켜주는 이 산부인과 만의 문화가 있지만 산모, 아기 둘 다 기력을 너무 소모해서 이번에는 하지 않고 바로 신생아실로 보내졌다.
자연분만 하면서 생긴 터진 부위들을 봉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추가 출혈이 있는지 조금 더 지켜보다가 오후 5시 30분 즈음에 입원실로 올라갔다.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걱정과 긴장의 터널을 지나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와이프님, 나 각자 부모님께 출산 잘 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분만실 들어가면서 부터는 내가 먼저 연락할 때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말씀을 드려놓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줄곧 내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셨다고 한다. 내 연락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셨다고.. ㅎㅎ
와이프는 긴장+진통+산통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모를 많이해서일까. 나오는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나 역시 긴장과 걱정을 많이해서인지 먹은 것이 별로 없음에도 저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선택했던 입원실 (모태 산부인과 3층 VIP실)이 생각보다 작아서 같은 가격에 크기가 더 큰 6층 VIP실로 짐을 옮겼다. (6층이 리모델링을 새로 한 곳이라서 같은 VIP실임에도 크기가 2배 정도는 더 큰 것 같다.)
위로 올라가서 짐 풀고, 나는 집에서 놓고온 짐들이 있어서 집에 갔다 오면서 저녁으로 먹을 피자를 사왔다. 와이프님은 병원에서 나온 저녁을 이미 먹은 상태. 여러 짐과 함께 피자를 갖고 왔고 막상 입에 넣으니 또 잊고 있었던 허기가 다시 돌아 결국은 잘 먹었다.
다른 산부인과 입원실들과는 다르게 퇴원하기 전까지도 별 다른 일 없으면 신생아임에도 애기를 입원실로 데리고 올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출산한 당일이고 와이프님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아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데리고 오는걸로 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거진 10달 가까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자는 것도 불편해 하면서 이래저래 뱃속에서 또리를 키워내느라 힘들었을 우리 와이프님. 거기다가 자연분만까지.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
남편의 위치에서 와이프님 대신에 고통을 분담하거나 그럴 수 있는 것들이 전혀 없었어서 한편으로는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 와중에 야근은 밥먹듯이 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틈 나면 맛있는 요리를 해주려고 했고, 그게 내가 와이프님을 보살펴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에 들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뱃속에 있던 아기가 이제 배 밖으로 나왔고, 본격 육아를 해야할건데 힘들지 않게 옆에서 많이 도와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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